(도쿄=뉴스1) 노민호 기자 =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19일 도쿄에서 열린 주일 한국대사관 주최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 기념 리셉션에 '깜짝' 등장했다. 통상적인 외교 관례를 의식하지 않고 한일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주며 큰 주목을 받았다.

이시바 총리는 이날 오후 도쿄 뉴오타니 호텔에서 열린 리셉션에 예고 없이 참석했다. 이시바 총리가 행사장에 나타나기 전까지 공식적으로 그의 참석 사실이 공표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시바 총리의 행사 참석은 '상호주의'로 불리는 외교적 관례를 '좋은 방향'으로 깬 것이기도 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리셉션에 앞서 지난 16일에 서울에서 주한 일본대사관 주최로 열린 국교정상화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지 못하고 영상 축사를 보냈다. 캐나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 때문이었다.

G7에서 한일 정상이 만나 첫 회담을 가졌기 때문에 영상 축사가 문제 될 것은 없었지만, 그 때문에 이시바 총리도 이날 행사에 영상 축사나 축사 대독으로 기념사를 갈음할 것으로 예상됐다. 외교에서 상호 의전의 수준을 비슷하게 맞추는 것이 관례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시바 총리의 도쿄 리셉션 참석은 '파격'이라는 평가마저 나온다. 한국을 '진심'으로 대우한다는 제스처를 한 것으로, 그만큼 일본의 한일관계 개선 의지가 강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외교적 메시지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은 이재명 정부가 한일 과거사 문제에 민감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설정을 추진하자 반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시바 총리의 측근이 지난 16일 방한해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에게 '과거의 합의를 최대한 존중하고 결코 후퇴하지 말 것' 등의 내용이 담긴 '역사 문제를 대하는 3대 원칙'을 빠르게 제시한 것도 일본도 한국과의 밀접한 관계 설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이 대통령이 지난 16일 서울 리셉션 영상 축사에서 '3대 원칙' 제안에 화답하듯 "미래로 나아가자"라는 메시지를 내자 "일본 측의 반응이 상당히 좋았다"라고 귀띔했다.

이같은 이시바 총리의 파격 행보에는 내달로 예정된 선거를 앞두고 여론을 관리하고, 잘 풀리지 않는 외교에서의 성과가 절실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다소 오르고 있긴 하지만 이시바 내각에 대한 지지율은 여전히 높지 않다. 지난 16일 발표된 교도통신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시바 내각의 지지율은 37%로, 부정 평가(48.4%)와 현저한 차이를 보였다.

일본은 내달 28일 참의원(상원) 선거를 치르는데, 이 선거를 앞두고 '정권 심판론'이 불거진다면 패배가 불가피한 것이 이시바 총리가 처한 상황이다. 여기에 미국과의 관세 협상도 제대로 풀리고 있지 않아, 이시바 총리에겐 한국의 '한일관계 개선' 제스처가 마른 땅에 내린 단비와 같이 여겨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일본센터장은 "7월 참의원 선거는 이시바 총리가 계속 자리를 지킬지 말지를 결정하는 선거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조 센터장은 이시바 총리가 자리를 지킨다면, 이 대통령을 일본으로 초청하고 자신이 11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것으로 '셔틀외교'를 전개해 한일관계를 계속 관리할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의 입장에서도 현재의 한일 밀착은 이점이 더 많다는 평가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과 앞으로 불거질 안보 청구서에 대한 전략을 공유하며 대응하는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동시에 동북아에서의 영향력 유지를 위해 안정적인 한일관계를 중시하는 미국에게 '어필'할 수 있는 카드가 된다는 측면에서도 도움이 된다. 그 때문에 현재의 한일관계 기류는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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