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중동에서 길을 뚫다]④ '팀코리아'가 만든 사막의 심장
자푸라1·루마1 프로젝트 현장을 가다…사막에 심은 K-기술
자푸라 발전소, 2055년까지 안정적 외화 수익원 '기대'
- 나혜윤 기자
(사우디 담만·리야드=뉴스1) 나혜윤 기자
"중동 최대 규모의 셰일가스가 매장된 자푸라의 가스플랜트는 머지않아 사우디 산업의 중심이 될 것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 동부 알하사 사막 한복판. 제3의 도시 담맘에서 2시간을 달려 도착한 이곳엔 지평선까지 끝없이 펼쳐진 모래뿐이다. 이 메마른 땅 한가운데, 마치 외계 기지를 방불케 하는 대형 구조물이 눈에 들어온다. 한전이 짓고 있는 자푸라1 열병합발전소다.
뜨거운 모래바람이 얼굴을 강하게 때리고, 섭씨 44도에 육박하는 땡볕이 피부를 가차 없이 쏘아댄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입안에는 모래가 씹히고, 고글이 아니었다면 눈조차 제대로 뜰 수 없을 정도다. 그늘 하나 없는 이 뜨거운 열기 속에서도 현장은 쉼 없이 분주했다.
철골 구조물 사이를 오가는 작업자들, 먼지를 잠재우는 살수차, 웅장하게 늘어선 설비들도 바쁘게 돌아간다. 한쪽엔 '무재해 900만 시간' 플래카드도 눈에 띈다. 현재 발전소의 공정률은 97.58%. 핵심 기자재인 가스터빈(17.2m), 주 보일러(52m), 보조보일러(60m ·굴뚝 2기) 등의 설치를 모두 마친 상태로, 시운전과 마감 공사가 한창이다.
임진웅 자푸라 법인장은 "해외에서 한전이 열병합발전소를 수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오는 10월 준공을 목표로, 이후 20년간 안정적인 운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는 전력구매계약이 한두 차례 연장될 가능성을 볼 때, 한전은 2055년까지 안정적인 외화 수익원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자푸라1 발전소는 사우디 국영석유기업 아람코가 140조 원을 투입해 추진 중인 '자푸라 셰일가스 개발 프로젝트'의 심장 역할을 맡고 있다. 셰일가스를 정제하는 데 필요한 317메가와트(㎿)의 전력과 시간당 315톤의 증기, 180톤의 계통수를 오직 아람코 전용 플랜트에 공급한다. 일반적인 발전소처럼 국가 전력망에 전기를 판매하는 구조가 아니라, 특정 산업 설비에만 전력과 열을 공급하는 맞춤형 발전소다.
이런 구조 덕분에 자푸라1은 발전 효율성과 안정성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한전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열병합 운영 역량을 쌓고, 사우디 내 에너지 핵심 파트너라는 입지를 굳혔다.
한전 관계자는 "일반 전력망보다 가스 플랜트는 24시간 안정적인 공급이 중요하기 때문에 플랜트 가까이에 전용 발전소를 둬야 한다"며 "가스전이 개발되면 (전용) 발전소가 계속 (돌아가야) 되니 확대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기술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자푸라1에는 국내 중소기업 다산DTS가 만든 공랭식 응축기가 설치돼 있다. 내륙 사막 지역 특성상 냉각수를 쓸 수 없어, 공기로 터빈 열을 식히는 기술이다. 이 설비는 가로 42m, 세로 65m, 높이 30m로 지상 3층 규모이며, 15개의 대형 팬이 증기를 식히는 역할을 한다. 축구장 절반 면적의 설비다.
공랭식 응축기는 일반적으로 해수나 강을 활용하는 수랭식보다 설치와 운전이 까다롭지만, 물이 부족한 내륙 사막에서는 필수적인 대안이다. 이번 자푸라 프로젝트를 통해 국내 중견기업 기술이 중동 지역에 처음으로 적용된 사례라는 점에서, 다산DTS는 물론 한국 기자재 산업 전반의 해외 진출 확대를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이제 막 첫 삽을 뜬 루마·나이리야 복합화력발전소 현장은 자푸라1 발전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동쪽으로 80㎞, 자동차로 1시간 반을 달리면 나타나는 사막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루마 현장은 아직 허허벌판이지만 포클레인 수십 대와 살수차, 트럭들이 곳곳에서 터파기 작업을 진행 중이다.
루마 프로젝트는 한전과 사우디 최대 민간 발전사 ACWA Power 등이 공동 개발하는 1890㎿급 복합화력발전 사업이다. 두산에너빌리티가 주기기를 공급하고, 건설은 중국의 셉코3가 담당한다. EPC(설계·조달·시공)를 넘은 'BOO(Build-Own-Operate)' 방식으로, 한전이 직접 운영하며 25년간 사우디 측에 전력을 판매한다.
현장에는 아직 철골 구조물 하나 세워지지 않았지만, 중장비와 인력들이 평탄화 작업에 한창이다. 사막 한가운데이기에 민원 걱정도 없고, 넓은 부지 덕에 대규모 설비를 여유 있게 배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제야드 르말 에너지컴퍼니 최고경영자(Remal Energy Company·CEO)는 현장에서 "사우디와 한전이 함께 협력할 수 있게 된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이번 프로젝트는 당사의 에너지 분야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와 미래 기회 발굴, 그리고 사우디의 지속가능한 에너지 인프라 구축을 위한 여정의 출발점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전력의 이번 프로젝트들은 '중동 2라운드' 시대를 상징한다. 과거 건설·시공 중심의 EPC 모델에서 벗어나, 직접 운영을 통해 수익을 내는 투자형 사업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한 것이다. 동시에 한국 기자재와 기업 생태계 전체를 동반 진출시키는 '팀 코리아' 방식으로도 크게 확장 중이다.
하지만 중동 사업이 마냥 순탄하지만은 않다. 한전 관계자들은 "사우디의 극한 기온은 시공과 운영 모두에서 큰 도전"이라고 입을 모은다. 여름철 기온이 섭씨 50도를 넘나드는 사막에서는 자재와 장비, 인력 모두가 기후 영향을 피할 수 없다. 현장에서는 정오부터 오후 2시까지 작업이 중단되고, 6월부터는 오후 3시까지 휴식이 연장된다. 근로자들의 '쿨링 타임' 시간이 반드시 필요해서다.
복잡한 국제 물류도 또 다른 과제다. 고온 다습한 사우디 환경에 맞춘 기자재 다수가 한국·유럽 등지에서 선적돼 오는데, 지정학 리스크가 발생하면 루트를 우회해야 해 수송 기간과 비용이 늘어난다. 한전 관계자는 "후티 반군 사태로 페르시아만에 지정학적 위기가 터져 기자재가 지연된 적도 있다"며 "1200㎞ 육로로 설비를 옮기면서 상상하지도 못한 일에 진땀을 뺐다"고 말했다.
2030 엑스포와 2034 월드컵을 앞두고, 리야드 동쪽은 사우디 에너지 확장의 전진기지로 탈바꿈이 한창이다. 이 뜨거운 사막 한가운데에서 사우디 미래의 에너지 심장을 짓고 있는 한전의 방향이 주목된다. 한전 관계자는 "그간 쌓아온 해외사업 노하우를 집중 투입해 앞으로도 지속 가능한 성과를 낼 수 있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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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올해는 한국전력 해외사업 30주년이다. 1995년 필리핀을 시작으로 30년간 15개국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펼쳐온 한전은 중동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UAE 바라카 원전을 기점으로 중동은 단순 수주 시장이 아닌 '검증된 기회의 땅'으로 부상했다. 본 기획은 해외사업 30년의 궤적을 짚고, 중동에서 모색하는 한전의 다음 30년 전략을 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