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와 세계화를 넘어, 다음의 과제는?

지난 반년은 계엄과 탄핵을 거치며 한국 사회가 정치적으로 얼마나 분열되어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시간이었다. 국민 사이의 정치적 양극화는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해졌고, 차기 정부는 어떤 정책을 추진하더라도 크고 작은 논쟁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한민국의 미래와 직결되는 청년층의 삶과 일자리 문제 역시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오히려 역사를 되짚어 보며 우리의 현재 위치를 점검해야 할 시점인지도 모른다. 차분히 역대 정권을 돌아보며 우리가 어떻게 지금에 이르렀는지를 살펴본다면, 정쟁 속에 가려졌던 한국 사회의 중요한 변화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의 기틀을 닦은 산업화 시대에는 문제의 구도가 비교적 단순했다. 전쟁의 폐허와 끔찍한 빈곤 속에서도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구에게는 그 어떤 일자리라 할지라도 소중했다. 군부 정권은 농촌에서 벗어나 도시의 판자촌으로 몰려드는 방대한 청년 인구를 교육과 훈련을 통해 전략적으로 육성한 제조업 분야로 흡수시켰다.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 신화가 탄생했다. 수출 지향 제조업은 민주화 시기에 이르러 다수의 청년들이 아파트와 자가용을 보유하고 표준형 4인 가족을 꾸릴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이러한 중산층을 기반으로 수립된 6공화국은 곧이어 중산층 지위를 둘러싼 치열한 경쟁의 장으로 변모했다. 6공화국의 중년층은 자녀에게 더 나은 경제적·사회적 지위를 물려주기 위해 끊임없이 분투했다. 부동산과 주식 투자를 통해 자산을 증식하고, 사교육으로 자녀들의 학업 성취를 높여 더 나은 일자리를 얻기를 기대했다. 세계화 시대에 태어난 6공화국의 청년층은 화려한 소비문화를 빛내는 세계도시 서울에 자리 잡고자 치열한 경쟁에 나섰다. 명문대를 거쳐 전문직 면허를 취득하고 서울의 중산층으로 진입하는 것이 6공화국 청년들의 대표적 성공 경로가 되었다.

문제는 서울을 중심으로 한 대기업과 전문직 일자리가 산업화 시대의 제조업처럼 새로운 표준이 되기에는 그 수가 너무 제한적이었다는 점이다. 산업화 시대의 ‘표준형 중산층 만들기’의 관성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일까. 국가 정책과 미디어 모두 갈수록 진입하기가 어려워지는 상류 중산층의 삶만을 조명했다. 그러는 사이에 지역 경제를 떠받치던 제조업 일자리는 점차 청년들에게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지 못했고, '지방 소멸'이라는 표현이 일상어가 될 만큼 수도권으로의 이주가 가속화되었다. 경쟁에서 낙오하거나 아예 참여하지 못한 이들은 잊혀져 갔다. 정권을 가리지 않고 더 많은 청년 다수가 겪는 삶은 피상적으로 소비될 뿐, 실질적 삶의 구조를 반영한 종합적 정책은 마련되지 못했다. 이 같은 소외와 압박감은 청년 세대에서 높게 나타나는 무력감, 분노, 사회갈등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처럼 다수 청년이 표준적 정상 가정을 이루고 중산층으로 편입되도록 정책을 설계해야 할까. 그러나 이 역시 현실적인 목표가 아니다. 청년층의 가치관과 세계 경제의 작동 방식까지 우리에게 익숙하던 모든 것이 근본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 정부가 청년 일자리 정책을 수립할 때 두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첫째, 서울 상류 중산층을 기준으로 삼았던 좁은 시야를 넘어 전국 각지 청년들의 삶을 재조명해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 지역·성별·계층별로 다양하게 분화된 청년들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쇠락한 제조업 도시의 청년과 수도권 베드타운의 청년은 모두 오늘날의 청년이지만, 그들을 둘러싼 환경은 제각각이다. 여기에 성별과 계층이라는 변수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이들이 실제로 어떤 삶을 살고 있으며, 무엇을 바라며, 어떤 일자리와 노동을 구상하는지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만이 6공화국에서 심화된 계층화를 넘어설 실마리가 될 것이다.

다만 한 가지는 반드시 종합적 비전을 가지고 추진되어야 한다. 바로 가치사슬 내 한국의 지위를 지켜내기 위한 산업정책이다. 한국의 모든 일자리는 결국 세계 시장에서 꾸준히 부가가치를 창출해 이를 국내에 재분배하는 기업들의 국제적 경쟁력에 좌우된다. 산업화 시대의 중화학공업과 오늘날 반도체 산업이 벌어들인 외화는 한국 경제의 피와 살이 되어왔다. 한편 미국의 절대적 패권 아래 구축된 세계 시장은 한국 수출 기업들이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만들어주었고, 이것이 6공화국을 선진국으로 도약시킨 핵심적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호조건도 위기에 처해 있다. 미중 무역 갈등, 세계 시장의 블록화, 중국 기업들의 거센 추격 등 외부 환경이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에서 양질의 일자리가 지속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지 여부는 이 국제적 풍랑을 얼마나 잘 헤쳐나가느냐에 달려 있다. 밖으로는 국제 경쟁 속에서 우리의 위치를 지켜내고, 안으로는 더는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청년들의 삶의 다양성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면, 새로운 세대가 다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