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수? 50년간 버티고 있을 뿐"…장마 시작에 불안한 강남·신림 사람들
수도권 시간당 50㎜ 호우 예보…반지하 주민들 "건물 벽·천장에 물 새"
상인들 "물막이판도 소용없어"…2년 전 침수 상가는 여전히 공실
- 신윤하 기자, 심서현 기자, 강서연 기자
(서울=뉴스1) 신윤하 심서현 강서연 기자
"침수? 그냥 50년을 버티고 있는 거지. 물막이판도 소용이 없어."
서울 관악구 신림동 신원시장에서 50여년간 금은방을 운영한 한현길 씨(77·남)는 "물막이판이 조금 도움이야 되지만, 설치하든 말든 물은 결국 넘어온다"며 체념한 듯 웃어 보였다. 큰비가 올 때마다 가게가 침수되니 바닥의 장판은 이미 울어 있었다. 한 씨는 "여기 진열장 바로 밑까지 물이 찬다"며 한숨을 쉬었다.
20일 수도권을 비롯해 전국에 장마가 시작될 것으로 예보됐지만, 전날(19일) 뉴스1이 찾은 서울 강남구 강남역 일대와 관악구 신림동 등 상습 침수 지역엔 물막이판, 역류방지기 등이 설치되지 않은 곳이 부지기수였다.
대표적인 상습 침수 지역인 신림동에 위치한 신원시장에서도 물막이판은 보이지 않았다. 장마를 앞두고 있는 상인들의 얼굴에선 긴장보다도 체념이 읽혔다. 한 씨는 "할 수 있는 게 없고, 그냥 사는 것"이라며 "가게 주인들이 새벽 1~3시에 물 넘친다고 전화를 해 주는데 그때 일어나서 와보면 뭐 하겠냐. 이미 다 넘친 상태인데"라고 씁쓸해했다.
과거 침수 피해가 발생했던 동작구 일대의 빌라촌도 물막이판이 설치되지 않은 건물이 대다수였다. 취재진이 신대방동의 반지하 건물 6곳을 둘러본 결과 물막이판이 설치된 곳은 전무했고, 1층 창문이 지면과 인접하게 지어진 빌라 15곳 중 3곳에만 물막이판이 설치됐다. 일부 건물은 배수구를 장판이나 나무판으로 덮어둔 상태였다.
빌라촌 주민들은 장마를 앞두고 불안하다고 호소했다. 6년째 신대방동 빌라 지하실에 살고 있다고 밝힌 박 모 씨(73·여)는 "여름마다 당연히 비가 걱정"이라며 "몇 년 전 물난리 났을 때 사람들이 가재도구 다 꺼내놓고 한 거 보니 너무 마음이 아팠는데, 구청 도움은 딱히 없었다"고 했다. 낮은 1층에 살고 있다고 밝힌 김 모 씨(41·여)는 "아직 침수를 경험하진 않았지만 벌써 습기가 엄청 많다"고 걱정스럽게 말했다.
동작구 신대방동 빌라촌에서 만난 80대 김 모 씨(여)는 비가 오기 전부터 건물을 보수하러 가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김 씨는 시멘트 가루와 붓을 든 채 "여기 비 올 때마다 건물 벽이나 천장이 새서 피해가 심한데 보상 혜택도 없다"며 "지금도 저기 3층 굴뚝에 물이 새서 때우러 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같은 시각 강남역 인근도 물막이판이 설치되지 않은 반지하 건물들과,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는 듯 나뭇잎, 흙 등으로 막힌 빗물받이 등이 눈에 띄었다. 강남역 일대는 2022년 폭우 당시 50대 누나와 40대 남동생이 뚜껑이 열린 맨홀에 빠져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는 등 침수 피해가 반복되는 곳이다.
주민들은 주말까지 이어질 장마에 긴장감을 드러냈다. 강남역 인근에서 만난 70대 김지영 씨(가명·여)는 "침수될까 봐 걱정이라 모래주머니 같은 걸 준비해 놓았다"고 말했다. 70대 이희찬 씨(가명·남)도 "3년 전에 비가 와서 집에 물이 조금 찼는데 정부로부터 적절한 보상을 못 받았다"며 "이번에는 불안해서 미리 판막을 준비했다"고 했다.
상인들은 120㎜에 가까운 호우가 서울에서 예상되는 만큼 물막이판을 설치하는 등 스스로 대비하고 있었다. 강남역 인근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60대 김민재 씨(가명)는 "관리실에서 차수판 설치하라고 공지를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몇 년 전 일어난 침수 피해의 그늘이 여전한 곳도 있었다. 강남역 인근에 위치한 서초구 진흥종합상가는 2022년 완전히 잠기는 침수 피해가 발생한 이후 현재 지하상가는 운영을 멈춘 상태였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한편에는 아직 설치되지 않은 물막이판이 우두커니 놓여 있었다. 지하상가엔 불이 꺼져 있고 서늘한 공기만 감돌았다.
상가 1층에서 인쇄·도장집을 운영하는 60대 이재영 씨(가명·남)는 "몇 년 전에 장마가 와서 지하에 물이 계속 찬 이후로 (장사하던) 사람들이 이제 다 나가버렸다"며 "이제 새로운 사람들도 침수 사실을 아니까 지하로 들어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강남역 근처 한 부동산 사장은 "3년 전 침수로 진흥아파트 주차장은 다 잠기고 강남역 쪽 저지대가 피해가 컸다"며 "우리도 웬만하면 반지하 세를 안 놓는다"고 했다.
기상청은 이날 수도권에서 이날 새벽과 오전 사이 경기 북부와 서해5도에 시간당 20∼30㎜, 오후에서 밤사이 시간당 30~50㎜씩 비가 내린다고 예보했다. 보통 시간당 강수량이 30㎜에 달하면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빗줄기이며, 50㎜를 넘기면 지대가 물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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