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생 없인 하버드도 없어"…'흰 꽃' 수놓은 하버드 졸업식
학사모에 트럼프 비판 문구 적어…흰 꽃으로 외국인 학생에 연대 표시
지난해 학생들 지탄 받던 가버 총장, 반트럼프 행보에 '영웅' 대접
- 박우영 기자
(서울=뉴스1) 박우영 기자
'유학생 없는 하버드는 하버드가 아니다.'(Without our international students, Harvard is not Harvard)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29일(현지시간)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 열린 하버드대학 졸업식에 일부 졸업생들은 이 같은 문구가 적힌 학사모를 쓰고 참석했다. 일부 졸업생들은 유학생들에 대한 연대 표시로 가슴이나 모자에 흰 꽃을 달고 나타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하버드대의 외국인 유학생 모집 자격(SEVP)을 박탈하겠다고 위협하는 가운데 열린 이날 졸업식에서는 다양한 연설자가 나서 트럼프 행정부를 직·간접적으로 비판했다.
졸업생 대표 연설에 나선 중국계 유학생 장위는 "우리는 서로의 전통 속에서 춤추고 서로의 세계가 지닌 무게를 함께 짊어졌는데, 그러자 갑자기 세계적 위기들이 개인적인 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며 다양성의 가치를 옹호했다.
그녀는 최근 교지인 하버드크림슨과 인터뷰에서도 "지도에서 색색의 경계로만 알아왔던 나라들이 하버드에서는 사람의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며 "내가 아는 하버드는 웃음과 꿈, 그리고 케임브리지의 긴 겨울을 버텨내는 끈기를 지닌 사람들로 가득했다"고 회상한 바 있다.
그녀는 이날 "다르게 생각하거나, 투표하거나, 기도하는 사람들을 단순히 다르다거나 틀렸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악하다'고까지 여기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며 "그럼에도 그들과의 관계를 붙잡아야 한다. 믿음보다 더 깊은 것으로 우리는 연결돼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공유하는 인간성"이라고 강조했다.
아브라함 버기스 스탠퍼드대 교수는 축사에서 "이미 많은 불확실성과 고통, 고난을 낳은 일련의 가혹한 정부 조치들에 맞서 싸운 여러분과 하버드에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분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지지를 받고 있다"며 "하버드가 보여준 명확한 입장과 본질적 가치를 용감히 수호한 점은 이 학교뿐 아니라 이 나라 전체에 큰 본보기가 되었다"고 칭찬했다.
앨런 가버 하버드 총장은 "여러분 중에는 이웃 거리에서, 미국 전역에서, 세계 각지에서 온 이들이 있다"며 "세계 각지에서, 마땅히 그래야 하듯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가 '세계 각지에서'라고 두번 반복하자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이들이 34초간 기립박수와 환호를 보내는 바람에 가버 총장은 잠시 연설을 멈춰야 했다.
유대인인 가버 총장은 지난해 졸업식 때만 해도 야유의 대상이었다고 WP는 전했다. 당시에는 하버드가 친팔레스타인 시위에 참여한 학생 13명의 졸업을 금지하자 수백 명의 졸업생이 가버 총장에게 야유한 뒤 단체로 퇴장하며 "Let them walk"(졸업하게 하라)라고 외쳤다.
그러나 최근 트럼프가 "하버드의 외국 비자 소지 폭도들과 교수진이 유대인 학생들을 표적으로 반유대주의적 증오를 조장해 왔다"며 대학 행정에 간섭하려 들자 가버 총장은 "따르지 않겠다"고 공개 선언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독주에 맞서는 상징적인 인물로 떠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1월 취임한 이래 대학들이 반유대주의, 반미주의, 마르크스주의 '극좌' 이념에 지배받고 있다고 주장하며 연방 자금 지원을 중단하고 외국인 유학생의 비자를 대거 취소하는 등 대학들과 '문화전쟁'을 벌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하버드에 교수진 채용 감사, 모든 입학 관련 데이터 제공,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프로그램 즉시 중단, 반유대주의 프로그램 개편에 대한 외부 감사 등을 요구했으나, 하버드대는 지난달 14일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를 따르지 않겠다고 공개 선언했다.
미국 정부는 이에 수십억 달러 규모의 보조금 지원을 중단하고, 하버드대의 면세 지위 박탈을 위협하는 등 전면적인 압박에 나섰다.
지난 22일에는 국토안보부가 하버드대의 유학생 및 교환방문자 프로그램(SEVP) 인증을 종료시켜 하버드대의 외국인 유학생 등록 권한을 박탈했다. 다만 하버드대가 즉각 연방법원에 행정부의 조치 시행을 중단해 줄 것을 요청하는 임시 가처분을 신청하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본안 판결 전까지 일시적으로 효력이 중단됐다.
이후 트럼프 행정부는 다시 유학생 등록 권한 박탈을 시도했으나, 매사추세츠주 연방지방법원은 이날 다시 한번 이를 금지시켰다.
alicemunro@aacca.pw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