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구경진 기자 = 이란의 한 가정집. TV에서는 여성들이 히잡을 벗고 머리카락을 자르는 영상이 나오고 있습니다. 화면 한쪽에는 이스라엘의 ‘일어서는 사자’ 작전 로고가 선명히 찍혀있는데요.

18일(현지시간) 이란 국영 방송(IRIB)이 해킹돼 이란 정부에 맞서 시위에 나서라는 내용의 영상이 송출됐습니다.

이란 언론은 “해커들이 방송을 장악해 거리로 나서라는 메시지를 송출했다”고 전했고 방송사 측은 “TV에서 관련 없는 장면이 보일 경우 이는 적이 수행한 사이버 공격 때문”이라고 알렸습니다.

이번에 송출된 영상은 2022년 마흐사 아미니 사망 사건으로 벌어졌던 대규모 반정부 시위 장면인데요. 당시 22세였던 아미니는 복장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도덕 경찰에 끌려갔다가 구금 중 사망했습니다. 이후 젊은 세대가 주축이 돼 ‘여성, 생명, 자유’, ‘독재자에게 죽음을’ 등을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죠. 미 싱크탱크 중동연구소(MEI)에 따르면 당시 160개 도시에서 최소 200만 명이 시위에 참여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영상 송출 직후 이란 당국은 인터넷 접속을 제한하는 조치에 들어갔습니다. 이란 통신부는 “일시적인 제한이며 상황이 정상화되면 해제할 예정”이라고 밝혔는데요. 평소 80% 수준이던 네트워크 접속률은 20% 이하로 급감했습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한 인터뷰에서 “궁극적으로는 이란 국민들 스스로 일어서야 하지만, 우리는 그 전복을 위한 조건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는데요. 이어 “이란 국민의 80%가 현 정권을 증오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번 전쟁의 목표는 이란 정권의 전복이 아니라고 여러 차례 밝혀왔지만, 이란은 이를 ‘심리전’의 일환으로 보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언론 전문가들 역시 이번 공습은 단순한 군사 목표를 넘어 이란 체제를 무너뜨리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이란 내 정권 전복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행보라는 평가입니다.

지난 17일에는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와 연계된 세파은행 ATM기에서 전국적으로 현금 인출이 되지 않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사이버 공격의 배후를 자처한 친이스라엘 해커조직 ‘프레더토리 스패로(Predatory Sparrow)’는 “세파은행은 국제 제재를 피해 이란 정부의 자금세탁과 미사일, 핵 프로그램을 지원했다”며 공격 이유를 밝혔습니다.

양국 간 전투가 일주일째 이어지면서 인구 900만 도시 테헤란은 사실상 마비 상태에 빠졌습니다. 이란 언론은 지난 17일 기준 이란 전역에서 최소 224명이 사망하고 1,8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으며 공습 대부분은 테헤란을 집중적으로 겨냥했다고 전했습니다.

시민들의 탈출 행렬이 이어지면서 도심 외곽 도로는 완전히 정체됐고 대중교통 티켓은 동이 난 상태인데요. 연료 사재기까지 겹치면서 주유소는 차량당 주유량을 최대 10리터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한 시민들은 지하철역, 모스크, 학교 그리고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지어진 노후 대피소에 몸을 피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폭격에 이어 ‘보이지 않는 전쟁’까지 더해지면서 이란 국민들의 공포와 불안은 증폭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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